“승진이 확실시됐던 사람인데….”
한 경찰 간부가 동료의 퇴직 소식을 듣고 한 말이다.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동료가 옷을 벗고 간 곳은 대형 로펌이었다. 그는 “일 잘하는 사람들이 승진도 마다하고 조직을 나가고 있다”고 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국면이 경찰에 반가울 것 같지만, 오히려 경찰을 ‘탈출’하는 인재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불거진 수사 인력들의 ‘엑소더스(대탈출)’ 현상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심사 결과를 보면 지난 3월 경찰청 소속 7명 중 5명이 법무법인이나 보험사, 정보통신업체 등에 자문위원이나 이사 등으로 취업이 가능하단 결정을 받았다. 2명은 수사 등 업무 이해관계가 있다고 인정돼 취업이 제한됐다. 지난 2월에는 경찰청 소속 12명이 법무법인 등 취업에 대해 심사를 받았고, 결과는 10명이 ‘취업 가능’이었다. 1월엔 24명이 심사를 받았고, 1명만이 법무법인 고문 취업이 제한됐다.
올해 1~3월 석 달 동안 로펌 취업 승인·가능 결정이 내려진 경찰은 총 16명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취업심사 결과에서 로펌 이직을 승인받은 경찰관은 48명으로, 지난 2020년 5명에 비해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 로펌으로 향하는 경찰관의 숫자는 지난해 수치를 넘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서울 지역의 한 경정은 “로펌으로 경찰 출신들이 많이 가는 현상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내부에선 강남권 근무를 희망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한다. 강남권에는 주요 로펌들이 모여 있는 데다가 경찰에도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아 향후 로펌으로 이직할 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사권 조정 및 검수완박 추진으로 경찰의 책임과 권한이 커지면서 경찰 출신이 우대받는 ‘전경예우(전직 경찰에 대한 전관예우)’ 현상이 조직 탈출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한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는 “경찰 단계에서 ‘혐의없음’ 불송치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경찰 출신 변호사나 전문위원들의 역할이 크다는 분위기가 많다. 심지어 의뢰인들도 로펌에 ‘경찰 출신이 있느냐’고 문의한다”며 “업계에선 ‘일 좀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경찰이라면 고위직뿐만 아니라 일선 과장 등도 데려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업무 과중으로 인한 수사부서 기피 현상도 원인으로 언급된다. 일선의 한 경찰관은 “수사 경찰들은 일은 갈수록 많아지고, 거기에다가 책임까지 더해지니 ‘이럴 바엔 그만두고 돈이나 벌자’고들 농담처럼 말한다”며 “실제 그런 경우가 왕왕 있으니까 그런 마음이 더 생기게 된다”고 했다.
수사 등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경찰관들이 로펌 등 업계로 이직하면 그 공백에 따른 피해는 국민이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선의 한 팀장급 경찰은 “경찰의 에이스들이라고 할 만한 인력들이 (조직을) 나간다면 수사력 약화는 당연한 수순으로, 사건 적체 등의 피해는 국민이 입는다”고 지적했다.
법관 출신 한 변호사도 “검수완박 등으로 경찰이 책임져야 할 범위는 커지지만, 인력 유출이 계속되면 경찰 수사력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치권은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고, 시장은 경찰의 유능한 인력을 빼간다. 그럼 국민을 위한 수사는 누가 하는 건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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